드디어 집을 구했다. 논과 밭, 집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팔괘리 마을에 아주 깨끗하고 예쁜 집을 구했다. 작년 연말부터 집을 계속 알아보긴 했지만, 1월초 '봄에는 집을 비워달라'는 집주인의 전화를 받고 참 많이 초조한 시간을 보냈다.
선생님들, 동네 어르신들의 소개로 이집 저집 참 많이도 보고 다녔다. 천장이 내려앉고 아궁이에 불 떼야 하는 그야말로 옛날집이 두채. 판다고만 하면 고쳐서 살아볼 생각이었지만 하나 같이 '바로 팔 생각은 없으니 그냥 들어와서 살라'고 했다. 하지만 실상은 '그냥' 들어가 살기는 힘든 상황이고, 내려 앉은 천장을 고치고 간단히 보일러와 수도만 손을 대도 수백 만원 이상 들여야 하는 형편이고, 얼만큼 살 수 있을지도 보장이 없었다. 전기도 끊기고 화장실도 없고 몇년째 비워진 임시 컨테이너 집, 창고를 임시로 개조해서 만든 블록집, 그나마도 선뜻 들어와서 살라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곧 이사갈 예정이라 하셔서 기다렸지만 아직도 이사가지 않은 집이 두 채. 밭과 집터가 마음에 꼭 들었지만, 외지인을 경계하는 마을 분위기 때문에 들어갈 수 없는 집. 마지막으로 딱 우리 형편에 맞는 집이었지만 무허가 집이라 온갖 노력에도 합법적인 방법을 찾을 수 없었던 집.
그런데 정작 이사갈 집은 아주 순식간에 진행되었다. '팔괘리에 집이 나왔는데, 전세고 집을 깨끗이 비워 놓기로 했으니 여름이네는 이사만 들어가면 돼.' 그리고 정말 며칠 사이에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계약서도 안쓰고 돈도 송금 안했지만, 집 열쇠는 우리 손에 들어와 있고, 집은 깨끗이 비워진 상태이다.
지난 몇 달, 봄바람이 살랑 코끝을 지나갈 때 봄이 반갑기 보다는 '봄에 집을 비워달라' 했던 집주인의 말이 떠올라 속상하고 불안한 마음으로 봄맞이를 했다. 장선생님(풀무학교 생태농업전공부 선생님) 말씀이 시골에서 집을 구하는 것은 남자와 여자가 만나 결혼하는 것처럼 쉽게 성사되지 않고, 각자에게 꼭 맞는 제 짝이 있는 법이라 하셨다.
집을 구하며 기도가 여러번 바뀌었다. 나름 내 기준, 아니 내 욕심에 맞는 집을 달라는 기도도 했고, 또 그 모든 걸 포기하고 내려놓는 기도도 했다.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 참 많이 답답했다. 온 동네 사람들, 선생님들이 우리집을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알아봐주시는 모습에 감동도 했다. 그리고 우리보다 더 오랜 시간, 간절하게 집이 필요했던 많은 분들이 양보해주셨기에 우리가 집을 구할 수 있었음을 느낀다.
지난 몇 달 동안, 공동체라는 말을 새롭게 깨달 수 있었다. 아니, 공동체라는 말까지도 필요 없다. 그저 '함께' 해야만 살 수 있는 존재임을 온 몸으로 느꼈다. 나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한다는 절망에서 희망을 발견하게 된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니, 함께여야만 한다는 희망! 함께라면 가능하다는 희망! 이것이 은혜가 아닐까? 모든 것이 풍족하게 넘쳐나고 돈만 있으면 모든 것이 쉽게 해결되는 도시 생활에서 공동체의 소중함을 깨닫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공동체라는 말이 피상적으로 다가올 수 밖에 없는지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이제 다음주면 '시어니가 열 둘' 이라는 시골생활을 드디어 본격적으로 하게 된다. (작년 한해는 읍내 변두리에 살았기 때문에, 이제야 본격적인 시작.) 언제든 불쑥 찾아와 문을 여실 동네 할머니들과도, 우리보다 더 훤히 우리 사정을 알고 계실 마을 분들과도 좋은 친구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옆집 새댁으로, 좋은 이웃으로, 동네의 아이로 마을과 함께 살아가길. 이제야 봄바람이 싱그럽게 느껴진다.
* 나들목교회 월간지 '도시樂 4월호'에 보낸 글
그나저나 숙제가 있어야 글을 쓰게 되는 나의 게으름이란...